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행사하는 권력은 자연이나 신으로부터 유래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자연으로부터 나온다면, 권력을 가진 자는 권력이 없는 자에게 양 앞의 늑대다. 즉 인간은 인간에게 늑대다(Homo homini lupus). 신으로부터 나온다면 인간은 인간에게 신이다(Homo homini Deus).
Carl Schmitt, Gespräch über die Macht und den Zugang zum Machthaber(Günther Neske Pfullingen, 1954), S.9-10.
인간이 인간에게 인간인 명제는 권력관계를 내포하며, 이 관계는 복종을 통해 성립된다. 복종은 자의적인 것이 아니라 동기화된 것이다. 권력에 대한 동의는 대개는 신뢰 외에 공포, 희망, 절망으로부터 생긴다…동의(Konsens)는 권력을 가동시키지만 권력도 동의를 가동시킨다. 모든 피권력자로부터 충분한 동의로 집행되는 권력은 모는 동의의 총계 이상의 잉여가치를 가진다. 현대의 권력자는 자신의 권력에 동의를 가동시킬 수 있는 수단을 칼 대제나 프리드리히 1세 보다 더 많이 가진다.
상동 11-12
권력의 고유한 용량 : 무시무시한 권력자라도 인간적 신체의 한계와 이성의 불충분성, 정신의 약함에 결부됨. 홉스의 국가론은 바로 이런 인간의 나약함에서 출발. 나약함은 위험을 낳고, 위험은 공포를, 공포는 안전을 필요로함에 따라 이러저런 기관을 갖춘 보호기구의 등장이 불가피해짐. 하지만 홉스에 의하면, 이런 모든 보호조치에도 불구하고 각인이 각인을 죽일 수 있음. 나약한 인간도 가장 강력한 인간을 없앨 수 있는 상황에 놓일 수 있음
상동 13-14
권력의 피할 수 없는 내적 변증법 : 모든 직접적인 권력은 조언이나 보고처럼 간접적인 영향들에 종속됨. 즉 권력의 밀실이 있음(ein Vorraum, ein Zugang zum Ohr, ein Korridor zur Seele des Machthabers). 어떤 이성적인 장치로도 이 밀실을 완전히 근절할 수 없음.
상동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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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사태와 관련해 아직 언론에 더욱 상세하게 보도되지 않는 사안은 북한의 오물풍선을 빌미로 국방부 장관이 합참의장에게 원점타격을 주문했는데 합참의장이 이를 거부함에 따라 계엄사령관 자리가 합창의장에서 육참총장에게 넘어갔다는 것이다. 사실 계엄사태 보다 더 무서운 일이 벌어질 수 있었다는 정황이다.
국내정치의 난관을 전쟁을 통해 해소하는 전략은 이스라엘의 네탄야후가 비근한 전형이기도 해서 윤씨일당이 충분히 모의할 수 있었다는 사실도 내란죄 수사에서 밝혀낼 일이다. 대통령 하나 잘못 뽑아서 국가가 무너질 운명에 처할 수 있었다는 것은 권력의 극심한 비대칭 문제를 드러내기도 하지만 한 개인이 감당하기에 너무도 벅찰 정도로 책임과 권한이 집중된다는 점에서 한국의 대통령제는 제왕적 성격이 강하다. 제대로 준비가 안되어 있지만 잘 포장된 인물에게 대권이 주어진다면 명태균의 말처럼 5살 꼬마에게 총을 맡기는 꼴이 되고 만다. 어떻게 보면, 이런 권력이 기피대상이 되는 사회야말로 진정한 민주공화국일 것이다.
한국의 현대사에서 이런 엄청난 권력의 기능을 정당하고 성공적으로 소화한 인물은 김대중 뿐이었고, 대부분의 대통령들은 불행한 결말을 맞이해야 했다. 여기에 또 한 명이 추가되는 것은 비극의 연속이다. 현정권은 현행 대통령제의 잠재적 위험성을 가장 극단적으로 표출했다.
여당이 이재명의 사법리스크를 대선일정과 연계시키려는 것은 그런 무소불위의 권력에 대한 두려움의 반영이기도 하다. 내년 초로 예상되는 대선에서 반드시 대통령의 권한을 의회로 분산시키는 개헌이 제 1의 공약이 되어야할 시점이다.
탄핵은 탄핵이고 긴급체포는 긴급체포다. 국회의 탄핵소추안 통과로 직무가 정지되더라도 헌법재판소의 판결 전까지 헌재의 심리에 대통령의 지위만은 유지한 채 적극적 방어권을 행사하겠다는 한가한 생각은 도대체 어떻게 나올 수 있을까? 이재명의 사법리스크에 견주어 자신의 사안을 법리적 문제로 보고 풀어보겠다는 발상이다. 자신이 초래한 사태가 마치 한편의 법정드라마같은 소재인줄 아나보다.
12월 4일 자정이 넘은 시각, 국회의 계엄해제 요구안이 통과된 뒤에도 국회법령집을 뒤져 계엄을 지속시킬만한 근거에 혈안이었듯이 오로지 법의 세계에 갇혀 있다. 하지만 헌법재판소가 다투는 것은 국회로부터 넘어온 탄핵소추안에 대해, 즉 대통령의 지위를 박탈하는 것에 대한 인용여부이지 내란죄에 대한 판단 자체는 아니다. 검경 내지 공수처, 나아가 특검을 통해 내란주범으로 구속기소되어 형사 재판에 서야될 사람이 아직도 대통령의 직위를 사적으로 활용할 궁리뿐이다.
더이상 대통령이 아니라고 헌재가 알려주고 내란수괴라고 법원이 선고를 해야 승복할 수 있는가? 의사가 사망선고를 내려야 자신의 죽음을 인정할 수 있겠다는 발상과 비슷하다. 이미 끝났는데도 말이다.
국힘과 윤석열에게서 헌법 재판소에서 법적 공방을 하겠다거나 계엄이 고도의 통치행위라는 말들이 나돈다.
정국의 완전장악을 위해 군대를 사적으로 동원해 국회를 해산하고 선거조작하려던 시도가 만천하에 드러난 마당에 괴담과 다름없는 언행들이다.
계엄선포의 전제인 비상사태를 판단하는 것이 주권자라면, 이 주권자로부터 권력을 위임받은 대통령이 주권자의 총체적 의사에 반해서 계엄시도를 한 것은 헌법에 대한 최악의 침탈이다.
헌법을 준수할 제 1의 책임자가 헌법을 파괴하려고 했다. 그것도 법을 잘 안다고 스스로 자부하는 법률가로서 말이다. 법과 권력을 사유물로 착각한 심각한 뇌손상이 의심되나 감형의 요건은 절대 안될 것이다.
탄핵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대통령이 내란주도 현행범으로 구속되면 대통령의 자리는 비어있게 되는 것(궐위)으로 해석할 수 있는가? 탄핵도 즉각퇴진도 거부하는 윤석열 일당의 최후 노림수는 이런 해석을 위헌이라고 볼 것이다. 헌법에 이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없으므로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국가 기능의 정지상태를 하루라도 빨리 해소하기 위해서 국회의 결단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우선적으로 시급한 것은 윤석열 긴급체포다.
사형이나 무기징역이 확실시 되는 자의 자리를 어떻게 오래 비워둘 수 있는가?
게임은 끝났습니다. 윤석열씨. 지저분하게 굴지 말고 당신의 옛집으로 갈 준비나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