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Vorstelltung

아퀴나스의 욕망

산사람 2013. 12. 16. 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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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스콜라 철학의 대부 토마스 아퀴나스에 대해 다음과 같은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젊은 시절, 당대 새롭게 발흥하던 도미니크 수도회에 아퀴나스가 입단하려 하자, 막강한 권세를 행사하던 그의 가문에서 이에 반대해 아퀴나스를 납치해서 감금시키기까지 한다. 이들은 아퀴나스를 회유하기 위한 일종의 책략으로 아름다운 여성 한 명을 아퀴나스가 감금된 방에 넣어 보냈다. 그러자 아퀴나스는 불타는 장작을 이 여성한테 짚어 던지며 쫓아냈다고 한다.

 

홍상수의 영화 중 비교적 형식화와 주제화의 면에서 성공적으로 보이는 <옥희의 영화>(2010)에서 폭설 후 두 명의 학생을 데리고 영화수업을 하는 장면에서, 한 학생이 성욕을 이겨낼 수 있냐고 묻자, 영화 감독은 그런 사람이 있다고 들어 본 적이 있냐고 반문하면서, 고민하지 말고 살라고 한다.

 

아퀴니스같은 사람이 여자의 유혹에 쉽게 넘어갈리는 만무하다. 나는 이것이 그의 성욕 통제가 탁월하다는 측면 보다는, 욕망의 순위라는 측면에서 보고 싶다. 인간인 이상 성욕의 통제가 가능할 수 있는 사람은 혹시 있을 수 있을지 모르나 확인할 길은 없으며, 성욕을 잠시 미루는 것은 통상적이며 어느 정도 규범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아퀴나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신학에 대한 그의 강렬한 욕망에 비해 성욕은 비루한 것이다. 더 큰 욕망이 작은 욕망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미루는 것이다.

 

<신학대전>을 집필하던 중 49 세의 아퀴나스는 어떤 환상을 체험하고 더이상 이 대작에 한 자도 추가하지 못한 채 2 개월 후 스탕달처럼 길에서 쓰러진다. 그가 본 것은 무엇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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