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은 발전의 뿌리?
조선사회에 대한 폄하로 논란중인 문창극의 교회 강연 동영상을 보니 언론에서 특정 부분의 발언에 대해서 문제삼는 것이 침소봉대로 보이기는 하다. 특정 종교 집단 내부에서나 통용할 만한 지극히 독단적이고 섭리주의적인 역사해석으로서 말이다. 하지만 그가 크리스찬 국가라고 천명할 정도로 기독교인이 대다수인 한국에서 그가 한 발언은 단지 사적 발언으로만, 또한 사교집단 내부에서의 발언으로만 볼 수 없는 성질의 것이다. 더군다나 장관도 아니고 총리 인준을 위해 청문회를 앞둔 사람이라면, 이런 강연은 응당 점검되어야할 총리후보의 역사인식의 문제다. 사인으로서의 그의 사견은 공론장에 포섭된 것이다.
조선이 지극히 부패한 사회로서 망국의 길을 열었다는 그의 인식에 나는 어느 정도 공감한다. 특히 조선 말기의 경우, 그가 밝힌 바처럼 왕조의 연명을 위해서라면 일본에 나라를 넘기는 것도 서슴치 않는 왕조의 지배층은 200년 전에 몰락했어야 할 가문이다. 사회의 개혁을 위한 움직임이 아래에서도 위에서도 실패한 상황에서 조선의 몰락은 지배층의 안이한 인식과 상황 대처에 주요 원인이 있다. 망국을 민족이 게으르고 나태하다는 민족적 습성의 차원에서 찾고, 이런 습성이 기독교의 유입으로 일소된 것이 역사적 기회였다는 발상에는 합당한 역사인식이 없다. 나태한 집권층을 부수기 위해 일어난 갑오농민전쟁에서 일본군의 개입이 없었다면 전세는 어떻게 됐을까? 집권층이 자신의 지배유지를 위해 외세와 손잡는 행태는 이 땅의 유구한 전통이다. 오늘날은 말할 것 없이, 옛날의 시대에서도 외교관계는 나라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는 중요한 문제다. 강력한 왕권에서 지배의 효율성을 달성하려 했던 태종의 집권기획은 시대를 넘어 지속될 수 없는 단기적 처방에 불과했다. 세습 왕권의 불완정에 출렁대는 왕조의 지배층에게 외교 문제를 제대로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은 결여됐으며, 이것의 결과가 왜란과 호란이었다.
망국의 길을 열고, 이 길을 따라 한국전쟁이 일어난 원인은 신의 뜻이 아니라 집권층의 무능과 나태였다.